바다를 생각하면 드는 기분은 자기가 믿고 있는 사랑의 느낌이라고 한다.

지난겨울 친구들과 바다에 갔다. 무엇 때문인진 알 수 없었으나 한참을 파도치는 바다만을 바라보았다. 파도는 계속해서 새로운 해안선을 만들었다. 나는 물에 젖지 않기 위해 조금씩 바다로부터 뒷걸음질 쳤다. 그러면서도 바다에서 눈을 떼지 못해서인지, 나도 모르는 새에 밀려온 파도에 양말이 축축이 젖어버리고 말았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하지만 다시 파도 앞에 섰다.

그때 바다를 본 기억은 꽤 오래 강렬하게 남았다. 세 달 쯤 지났을 무렵 피아노를 치다가 우연히 그 바다의 기억이 떠올랐고, 그 기억을 떠올리며 손을 움직였다. 손이 가는 대로 치다가 실수를 하면 잘못 누른 음으로 다음 마디를 구성하고. 잔음 뒤에 이어지면 좋을 음들을 생각하면서 쳤다. 그게 우연한 바닥의 돌출을 만나 표면의 일렁임을 만들어내는 바다와 닮았다고 생각한다. 그 즉흥 연주를 기반으로, 그때 바다에서 찍었던 영상에서 추출된 사운드의 일부를 삽입하여 이 사운드가 만들어졌다.

그 거셌던 파도도 그 파도를 함께 보던 것도 모두 기억이 되었다.

겨울바다의 기억(2020).

분류: sound. improvised piano, soundscape, text.

정승은

본가의 오래된 피아노, 영상 추출 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