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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은 '방어기제'를 주제로, 설치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사진 작업이에요.
낯선 사람을 마주할 때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해 적절한 거리를 설정하려고 하잖아요. 이제 어느 정도 파악했다 싶다가도 예상을 완전히 깨는 타인을 마주하고 당황하고 불안해하기도 하고요. 그런 것들을 방어기제의 작동 속에서 벌어지는 내면의 역동이라고 보고 표현하고자 했어요.
이 작업을 할 때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관객이 작업의 의미를 파악하려 공을 들이거나 애를 쓰지 않아도 되게 하는 거였어요.
이건 당시 제가 예술사진을 탐구하면서 종종 들었던 느낌과 관련이 있는데.. 말하기가 좀 조심스럽지만, 자꾸 ‘어쩌라고! 아 그래서 뭐 어쩌라고!’ 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를테면 하나의 시리즈 안에 들어가 있는 여러 사진들이 서로 어떤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고, 시리즈 제목은 사진만 봐서는 도저히 유추할 수 없는데 도대체 뭔 상관일까. 뭐 어쩌라는 걸까. 보는 사람 생각은 한 걸까? 하는 그런 느낌.. 그런 느낌이 유쾌하지 않기도 했고. 또 그런 느낌 자체가 납작한 사진 이면의 의미를 파악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에서 작업의 주제인 '방어기제'와 닿아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타자에 대한 방어기제와 예술작품을 볼 때의 방어기제 문제를 교차시킬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이 작업은
관객이 작업의 일부가 되어서 작업의 주제를 체험하고, 스스로 알아차리고 탐험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어요.
바닥에 설치된 사진을 발견하면, 관객은 자신이 피사체의 머리 꼭대기 위에 있는 걸 체험할 수 있어요.
천장에 설치된 사진을 발견하면, 관객은 피사체의 발 밑에 있는 걸 체험할 수 있고요. 상대방의 머리 꼭대기 위에 있는 것 같다가도 상대가 내 머리 꼭대기 위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직관적으로 표현한 거예요. 관객은 작업 앞에 위치해서 우연히 사진들을 발견했다가 작업이 표현하고 있는 상황에 처할 수 있고요.
피사체의 여러 면모를 투명한 용지 4장에 나누어 프린트해서 겹쳐두고, 관객이 다음 장을 열어볼지 말지 선택할 수 있는 부분도 있어요. 관객이 다음 장을 열어보면 피사체(타인)의 다른 면모를 볼 수 있죠. 사진의 이면을 볼지 말지에 대한 선택이 타인의 이면을 볼지 말지에 대한 선택, 즉 한 번 더 만나서 내가 받은 인상과 다를 수 있는 타인을 마주할지에 대한 선택과 교차하게 되는 거예요.
피사체의 실루엣이 희미하게 보이고 위에 깨진 거울조각이 있어서, 관객이 피사체의 형상 안에서 자기 모습을 볼 수 있는 장치도 있어요. 타인을 보지만 결국 보게 되는 것은 자기자신뿐이죠. 타인에 대해 부과한 어떤 해석과 판단도 결국 나에 대한 것임을 표현한 거예요. 내가 생각한 타인은 어쩔 수 없이 타인에 대한 '나의' 생각이고, 나의 어떤 부분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요.
타인을 예상하려 할수록 내 예상을 깨는 타인을 마주하게 되고. 타인이 나의 이해로는 절대 완전히 포섭될 수 없을 만큼 정교하게 구성된 존재로 느껴지는 것. 그 아득함과. 도무지 벗어날 수 없는 스스로의 굴레에 대한 갑갑함, 숨막힘. 그런 것들을 떠올리며 작업했습니다. 관객의 체험이 ‘직관적으로’ 제가 의도한 주제로 이어지게 하려고 정말 많이 고민하고 애를 썼어요. 직관적 체험에 중점을 두고 작업한 만큼 관객이 작업을 어떻게 경험하는지가 궁금해서 과제전에 친구들을 초대해서 반응을 보기도 하고 작가 아닌 척하고 작업 앞에 서성이기도 했는데요. 친구들마다 다른 점을 알아보는 게 재밌더라고요. ‘이거 여기(투명이들) 사이로 들어가서 보는 거야?’라거나, 정수리컷과 발쾅컷이 세트가 아니냐며 저에게 물어보는데, 짜릿했어요. 정수리컷과 발쾅컷이 짝pair이라는 걸 알아본 친구들과 발쾅컷 밑에서 두려워하는 표정으로 사진을 찍기도 했죠. 과제전 첫날까지 깨진 거울을 구하지 못해서, 스테이트먼트에는 거울이 있다고 되어 있었지만 실제 작업에는 거울을 붙이지 못한 상태였어요. 친구들이 그걸 보고 물어봐서 의미를 알려줬는데 거울 붙이면 좋을 것 같은데 거울 붙이면 안되냐고 하면서... 보안경도 빌려주고 어떻게 하니 거울이 잘 깨지더라 하는 생활의 지혜도 전수해주었어요. 제 작업에 공감해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작업을 원하던 대로 완성할 수 있어 더 뜻깊은 경험이었습니다.
'알고 보면'이 매체적 실험으로서 갖는 의의
사진 작업을 보는 경험은 근본적으로 시차를 가집니다. 사진을 찍는 순간의 상황은 사진의 얇은 표면에 기록됩니다. 사진 속의 상황은 사진을 찍는 순간에 멈춰 있습니다. 사진을 볼 때는 과거의 이야기를 제3자의 시선에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알고 보면'은 사진의 얇은 표면 안에서 모든 이야기가 이뤄지는 사진 장르의 전통을 벗어나서, 사진이 표현하고자 하는 상황을 전시 공간에 풍경처럼 펼쳐놓습니다. 관객이 전시 공간에서 사진을 응시할 때 비로소 상황이 재현됩니다. '알고 보면'은 관객과의 관계 속에서 현재의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사진의 시점을 '과거의, 누군가의 이야기'에서 '지금, 나(관객)의 이야기'로 옮겨옵니다. 누구나 타인과 마주하며 겪어보았을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상황을 사진의 소재로 주목해 색다른 경험으로 풀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