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나만의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고 프로젝트가 중심이 되는 삶을 살았다.

최초의 프로젝트

가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하는 프로젝트 중 최초는 열하나에서 열두 살 무렵. 영어학원 리스닝 파일을 5번씩 반복해서 듣는 거였다. 영어 발음을 잘 하고 싶은 의욕에서 출발.



첫 번째는 발음을 듣고
두 번째는 나도 같이 발음을 하고
세 번째에는 발음을 더 완벽하게 하려 하고
네 번째에는 억양까지 흉내내고
다섯 번째엔 발음과 억양을 다 생각하면서 따라하기!
이걸 매일 했다.

열네 살엔

하루에 16시간씩(지금은 못해..) 공부를 하며 이 방법 저 방법을 실험했다. 그러다 중2때쯤 되니 나에게 꼭 맞는 공부법과 각종 요령들을 깨우칠 수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내가 학년이 올라가고 공부할 게 많아졌을 때에도 공부를 일찍이 끝내놓고 프로젝트를 위해 시간을 쓸 수 있게 해줬다. 지금까지도 잘 써먹는 중~헷.

비슷한 시기엔 물리학자가 되고 싶었고 상대성이론에 대해 칼럼을 썼다. 시작은 과학시간에 초끈이론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푹 빠진 거였다. 존재하는 것들을 더 작은 단위로 쪼개고 쪼개고 쪼갤 수 있다든지, 중력장에 의해 시공간의 휨이 발생한다든지.

우리가 인지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것들의 작동 속에 우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

이 무척 흥미로웠던 것 같다.

(…

물론 당시 내가 느낀 흥미가 이런 맥락 속에 있다는 걸, 열다섯 살 당시엔 알지 못했다. 이건 (무려) 22살의 내가, 그간 흥미를 느꼈던 것들을 들여다보고 덧붙이는 해석.…)

나의 관심사는 우리의 ‘인지’로 이어진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우리의 인지와 다르게 생겼다면, 우리가 인지하는 세상은 무엇인가?

우리가 세상을 감각하고 인지하는 방식에는 어떤 원리가 숨어있는 것인가 (도대체)!!!

나는 학교 과학 선생님을 찾아가 “꿈은 어떻게 꾸는 거예요?” 식으로 무작정 묻기도 하고. 책, 인터넷을 뒤지고. 고등학교 과학서적을 뒤적이기도 했다. 지금이야 뇌인지과학이 꽤나 잘 자리잡힌 분야이지만 그때만 해도 국내에 관련 정보가 많이 없었고, 그 덕에 내가 원하는 희귀한 정보를 어떻게 알 수 있는지를 훈련할 수 있었다.
나는 운 좋게도 MIT BCS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양질의 기사들을 발견한다. 그걸 가뭄의 단비처럼 여기며, 한국말로 읽어도 어려울 정보를 직접 번역해서 보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당한다. 다른 곳 어디에도 없는 정보라 그걸 읽고 있으면 내가 무척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럼에도 번역은 쉽지는 않았고 어려운 걸 어렵게 하는, 겹겹의 어려움에 익숙해져갔다.

감각기관과 인지과정에 대해 알수록, 우리는 우리의 인지 속에 갇혀 있고 사실은 영원히 알 수 없다. 는 생각이 강해졌다. 그리고 나이를 조금 더 먹어서인지

사람들의 인지에 작용하는 감정이나 사회적 요소

를 더 크게 느끼게 되었다. 결국 나는 중학교 졸업을 앞둔 시점, 문과로 전향하여 인간과 사회에 대해 직접적으로 다뤄보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때 이후로 과학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따금 예전 프로젝트가 남긴 것들을 무심코 마주한다. 이를테면 몇 달 전에는라투르의 행위자-네트워크를 배우고는, 대뜸 중력장에 의해 휘어버린 좌표의 이미지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근데 다시 여러 번 생각해보니 아닌 것 같았다). 또는 개별자들마다 고유한 진동수를 가지고 있다고 무심결에 생각하기도 했다 -아마 이건 초끈이론이 남긴 임팩트일 거다. 초끈이론은 (내가 기억하기로는) 입자를 계속해서 쪼개면 최종으로 나오는 것이 ‘끈’이며 끈들의 ‘진동’이 세상을 이루는 기초라고 본다. - 코딩으로 움직이는 이미지를 만들 때 사용하는 수식이 이 시절에 공부한 물질의 운동성 수식과 똑!같아서 오예~ 쉽게 하기도 했다. 생명과학에서 자주 본 순환의 이미지를 나도 모르게 연상에 활용하는 일도 잦다. 그럴 때 내가 애정을 쏟은 만큼 프로젝트들이 내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이 되었구나, 느낀다.


(여기서 잠깐! 쉬어가는 타이밍~)

여기까지 쓰면서 너무 어릴 적에 너무 어려운 걸 공부했구나, 지금의 내가 감당하기 벅찬 걸? 아 너무 내 자랑인가 생각도 했다. 그런데 뭐. 지적 호기심이 많은 게 무조건 좋은 것이고 그 자체로 가치를 내재한 건 아니니까. 지성도 하나의 특징이고 괴짜스러움 중 하나인 거다. 다 각자의 방식으로 괴짜스럽고 지성도 괴짜스러움의 분류 중 하나~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입시를 위해 학생을 심하게 통제, 관리했다. 책을 읽거나 나만의 탐구를 하고 있으면 그럴 시간에 내신 공부나 더 하라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나는 입시에 보다 자유로운 생각을 지니셨을 외국인 선생님들을 틈날 때마다 찾아가 대화를 나눴다. 선생님들은 나의 호기심과 탐구를 지지해주셨다. 그러다 선생님의 추천으로

영시 서른여 편을 읽고 레포트를 쓰는 프로젝트를 했다.

원래 시적 표현을 좋아하는 편이긴 했지만 영시를 읽는 것은 영단어들의 행간에서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서양의 역사와 문화를 읽어내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시인마다의 생애와 그들이 살던 시기의 사회적 맥락을 조사해가며 시의 의미를 나름대로 그렸다.

시대적 맥락과 개인적 경험들이 맞물려 각자의 독특한 지점을 만들어내는 것이 즐거웠다

영시 분석 레포트에 이어서 《Brave New World멋진 신세계》를 읽고 레포트를 쓰는 프로젝트를 했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아기들을 정교한 시스템으로 세뇌 교육시켜 각각의 계급에 맞는 model citizen을 양성한다. 각자가 욕망하고 선택한 것이 실은 모두 중앙정부의 이익과 편의에 맞춰 주입된 것이라는 점에서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우리 사회의 면모가 아닌가. 나는 이 책에 대한 레포트를 쓰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마치 유기체처럼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구성원들을 재생산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고3이 되기까지 나의 프로젝트는

내가 어떤 구조와 얽혀 있는지

를 탐구하는 것이었다. 내 탐구의 시작이자 근거는 나의 일상적 경험이고. 일상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들이 사회의 이곳저곳에서 반복된다는 점에서 거시적 구조를 드러낸다고 생각했다. 나는 일상에서 느낀 작은 감각들과 최대한 가까운 단어들을 생각해내 검색창에서 이리저리 조합했다. 그러면 사이트나 논문들이 나왔다. 이때

사회학 이론들이 작은 직관들을 예리하게 만들어주는 것을 보고 사회학과 진학을 결심했다.

나는 존댓말 체계가 만들어내는 권력관계, 가부장제, 입시 위주의 교육문화 같은 것들이 사람들에게 폭력으로 작용하는 양상, 나와 사회의 관계, 자아의 진정성과 다중성(페르소나) 등등을 주제로 탐구했고. 수행평가 같은 걸 기회로 삼아 글로 완성해냈다.

당시의 나는 자신이 어떤 구조 속에서 제약당하고 있는 존재인지 ‘아는 것’이 그 구조에서 벗어난 선택지를 상상할 수 있게 하고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새에 얽혀 있는 구조를 ‘알게 하는 것’, 그렇게 되도록 사람들을 자극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 예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구조에 대한 탐구를 내보일 때 그 형태가 논문이면 그 학문을 공부하는 소수의 사람에게만 효용이 있게 되는데, 반면 예술은 더 많은 사람(대중)에게, 감정적이고 직관적으로 메시지를 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회학적 관점의 예술

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열일곱과 열여덟 살엔 프로젝트가 정말 일상이었다. 야자 1차시까지 내신, 수능과 관련된 모든 공부를 끝내놓고 (thanks to 열네살의 프로젝트) 야자 2, 3차시는 오로지 나의 프로젝트만을 위해 썼다. 입시하는 기계가 되기를 요구받는 것 같았던 고등학교 생활에서, 나의 프로젝트는 나를 펼쳐나갈 수 있는 해방구이자 나를 지지해주는 아지트였고 내가 돌아갈 곳이었다.

그러다 고3이 되었다. 19살부터 21살 상반기까지는 대체로 무력감에 빠져 지냈다. 우선 고3이 되고 나서는 이전만큼 마음 편하게 나의 탐구를 할 수 없었고, 스무 살이 되어서는 꿈꾸던 서울살이를 하게 되었지만 현실이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무작정 미대 전공수업에 뛰어들었던 것도 큰 영향을 주었다.

무언가를 그럴듯해 보이게 만들어내는 과정은 글만 써온 사람이 쉽게 적응하기 어려운 차원들을 가지고 있었다.

나조차도 '조야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만들어내고 보이면서 부끄러움, 초라함, 스스로의 역량 부족과 전공생들과의 쉽게 따라잡을 수 없어 보이는 차이, 스스로에 대한 의심 같은 것들을 느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나는 그간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발전시켜온 가치관들이 무너져내리고 새로운 필요가 떠오르는 걸 수없이 겪었다. 이를테면



일상을 살기만도 피곤한데 자신이 노출된 구조적 폭력까지 생각하라는 건 너무 가혹한 거 아닌가. 너무 많은 짐을 지우는 게 아닌가. 없는 희망도 믿으며 살아가는데 당신은 이러이런 구조적 폭력 속에 놓여 있어 라고 낱낱이 까발려주는 것도 일종의 폭력이 아닌가
인간의 모든 행위가 타자에게 느껴질 땐 구조가 되는데. 어떻게든 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게 아닌가? 구조 속에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결국 모든 사람은 자기 삶을 소중히 여기고 어떻게든 잘 풀리길 바라면서 사는 것...

이땐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기보다는, 무력한 상태에서 이런저런 무너져내림과 번뜩임을 겪었다고 할 수 있겠다.

스물한 살로 넘어가는 겨울에 대2병을 세게 앓았다. 예술을 하고자 했던 이유가 무너졌고, 앞으로 뭘 하며 돈을 벌어 먹고 살 수 있을지도 큰 고민이었다. 여러 가지 가능성과 한계를 짐작해보다가, 결국 이런 결론을 내린다.

나의 가장 큰 장점

(…

나의 가장 고유한 부분. 가장 유별나고 괴짜스러운 부분. 그래서 내가 가진 것들 중 가장 뛰어나고 내가 가장 극복할 수 없는 부분. 나를 대단해 보이게 할 수 있는 동시에 내 발목을 잡는 부분 …)

은 민감한 감수성과 직관력이다.

감수성은

(…

감각, 사고 및 감정에 있어서 경험에 반응하는 작가의 특징적 능력. 사물에 대해서 아주 사소하게 보이는 것까지도 생생하게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능력. 모든 것을 신기하게 본다. 감수성은 사물에 대한 체험이 오관을 통해서 생생하게 이루어짐으로써 형성되는 것이다. 세계관의 변화 추세에 맞춰 그때그때의 시각을 형성시키는 힘이며 일상화된 감각의 틀을 깨고 자동화된 인식을 일깨우는 힘. 낯설게 하기의 원천이 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문학비평용어사전…)

를 말한다. 새로운 분야든 지금 가진 객관적인 지위로 얻을 수 있는 안정적인 일이든 어차피 돈 벌 수 있는 정도까지 되려면 개고생해야 한다. 어차피 개고생할 거 내가 더 많은 잠재력과 흥미를 가진 분야를 택해야지. 내 사고의 특징이 잘 발현될 수 있는 분야는 예술. 게다가 예술을 하면 나의 표현욕을 어쨌거나 다루고 살 수 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예술 쪽에서 견뎌보자

스물한 살의 여름 나는 아주 작은 성취들에 과한 칭찬을 해주기로 했다. 그러면서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를 처음부터 차근차근 혼자 익혀나갔다.

예뻐서 캡처해뒀던 이미지들 중에 기본 도형만으로 이루어져서 제일 쉬워 보이는 이미지를 고르고, 배경색을 어떻게 넣고 원을 어떻게 그리고 원의 두께를 어떻게 조절하는지를 하나하나 유튜브로 검색해가며 익혔다. 그리고 하나를 해냈을 때마다 “수수하지만 굉장해!” 칭찬을 해주었다. 조금씩 하다 보니 여름이 끝날 때쯤엔 꽤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스물두 살 상반기에는 사진에 집중했다.

예술사진에 대한 책들을 찾아 읽고 일주일에 서너 개의 전시를 보러 다녔으며 관심 있는 작가들의 인터뷰를 찾아 읽고 작품을 분석했다. 하고 싶은 작업을 생각하고 트리트먼트를 짜고 모델을 섭외하고 스튜디오를 빌리고 촬영을 하고 편집을 했다. 학교 축제에서 사진 부스를 열고, 휴학생이면서 청강하던 수업의 과제전을 위해 주6일 학교에 출근하고 거금을 들였다. 낮은 마음으로 조금씩 쌓아가다 보니 생각보다 멋진 것들이 나오기도 했다. 예전부터 나랑 잘 맞다고 생각해온 것들이 어쩌다보니 다 반영되어 있는 작업이 나온다든지, 아무튼 굉장히 독특한 게 나온다든지.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나만 할 수 있는 것들이 나왔다.

그래서 요즘은 내가 너무 애를 쓰거나 나를 몰아붙이지 않아도

이미 내 안에 멋진 것들이 있다

고 생각한다.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나는 답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를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내가 나만의 맥락과 힘singularity을 지닌 존재임을 느끼고 원하는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존재마다 가진 고유한 결, 존재에 내재한 창발성과 특이성.

미대 수업을 듣고 창작을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뭐 하는 사람이냐’는 질문을 꽤나 자주 받는다. 나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매일 열 시간 이상을 작업에 투자하면서도 나는 작업하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뚜렷한 장르를 지향하지도 않고 나의 작업물은 다 뭔가 부족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작업하는 사람’

이라고 말한다.

작업자라 함은 장르로 분절하지 않고, 내 삶에서 자연스레 나오는 주제와 형태를 존중하며

작업을 이어가고자 하는 의도에서 부여한 정체성이다.

내가 말하는 작업은 이런 것이다. 그동안 익혀둔 사진 기술을 이용해 사진 작업을 할 수도 있지만, 표정이 잘 드러나는 특징을 이용해 어떤 감정을 연기하는 모델이나 퍼포머로 작업을 할 수도 있다. 대학에서의 전공과 관련해 사회학적인 연구 작업을 할 수도 있고. 등등.
이런 활동들은 장르만 보면 이질적이어서 처음엔 뭐 하는 사람인지 감을 잡기 어렵겠지만,

여러 이질성들 사이에서 내가 나이기에 발휘되는 고유함과 일관성이 오히려 강조될 거라고 믿는다.

그간 나의 프로젝트들이 이질적인 분야들을 거쳤지만, 그들 사이에 일관된 부분이 있는 것처럼. 나는 과학도였던 시절엔 존재의 과학적 원리를, 사회학에 빠졌을 땐 존재의 사회적 구성을 좇았으며, 지금은 존재의 역동성을 좇고 있다.

존재에 내재한 여러 면모들을 발견하고 그걸 표현하는 일이 나의 가장 코어core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과학을 깊이 공부했으면서 문과를 택하고, 시도해보지 않은 미술에 뛰어들 만큼. 장르의 경계가 무의미하게 느껴질 만큼.

나에게 강렬하게 느껴지고 나를 움직이게 하는 무언가.

나는 장르나 영역, 현상들 이면에 천천히 움직이는,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삶의 면면들이 있다고 보며, 그것이 나의 가장 유구한 관심사이다.

쉬운 이해를 위해 숫자를 매겨 정리해보자. 나의 코어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1. 분류에 가로막히지 않고 ‘삶’ 자체를 다룬다
2. 삶의 면면들을 기민한 감수성과 직관으로 포착하고
3. 그걸 표현하고 싶어한다.
4. ‘프로젝트’의 형식으로, 성실하고 체계적으로 탐구, 표현한다.

이제 최근에 진행한 프로젝트들을 간략히 소개하며 이야기를 마칠까 한다. 최근 6개월간 진행한 프로젝트들!!



- 10월 한 달 간 매일 2~3시간씩 코드로 이미지 만들기
- 애착의 대상을 장소처럼 느끼는 면모에 대하여 (물리적 공간과 장소 개념, 온라인 공간의 장소성, ‘마음의 터’, 작업과 관객 사이의 감응)
- 올해 6월부터는 내 활동들을 전개해나갈 영토로 온라인 공간이 적합할 거라고 생각하고 나만의 웹사이트를 구축하고 있다. 분류에 얽매이지 않고 뻗어나가는 사고, 다양한 형태의 결과물을 담기에 웹의 하이퍼텍스트성이 유용할 거라는 판단.
- 비인간 행위자에 대한 관심! 작업을 구성하는 의도한/의도하지 않은 요소들을 관객의 인지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자로 보기. 그럼으로써 관객 경험의 다중성, 복수성을 존중하기. 그리고 컴퓨터/코드나 아두이노를 비인간 행위자, 나와의 공동 작업자로 보고 탐구하기. 비인간 행위자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사이보그로서의 인간 –과연 사이보그는 더 강해지기만 할지? 그들이 사이보그가 됨으로써 감수하게 된 것들.

여기까지 저의 이야기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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