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Code Resonance on Time2022-20232 Channel Videos, Loop
인간-코드 감응: 시간2022-20232채널 비디오, 루프
Human-Code Resonance: Time is an installation work consisting of two channel videos of text and moving image facing each other. The channels share common movements that appear at the same time and slowly disappear over time. The text on one side is an essay written from the artist's point of view. Taking the position to see the code as her collaborator and the error as conflicted opinions, the text mutters some perception that arises while encountering numerous errors. In the muttering the code's logic of existence and human's logic of existence repeat to be overlapped and slided away with each other, and finally converge to their common condition of existence: Time. The moving image on the other side is the result of the collaboration that went through numerous errors. The movement strongly resembles the fluttering of heartbeat, exuding vitality. It takes randomness and repetition with its objects newly created and then disppear over time, following the logic of existence muttered on the opposite side. In a meditative atmosphere created by the infinitely repeated movements, the audience can not only watch the resonance of human essay and code image but also be together in time, the common condition they share.
인간-코드 감응: 시간 은 붉은색 무빙 이미지와 텍스트가 마주 보고 있는 설치이다. 둘은 동시에 나타났다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흩어지는 움직임을 공유한다. 텍스트는 작가의 입장에서 쓰인 에세이이다. 작가는 코드로 이미지를 만들면서 코드가 가진 힘을 느꼈다. 작가에게 코드는 작가가 할 수 없는 일을 해주는 행위자이자 공동 작업자이며, 에러는 공동 작업자와의 의견 충돌이었다. 텍스트는 에러 코드를 마주하면서 떠오른 인지들을 중얼거린다. 코드의 존재 논리와 인간의 존재 논리는 서로와 닿았다가 미끄러지기를 반복하며 시간이라는 공통의 조건으로 수렴한다. 맞은 편의 무빙 이미지는 작가와 코드가 여러 에러들을 거치며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무빙 이미지는 심장박동처럼 펄떡이며 생기를 내뿜는다. 무작위성과 반복성 속에서 무빙 이미지를 구성하는 오브젝트들은 생성되었다 사라지는데, 이 존재의 논리들은 맞은 편 채널의 텍스트에서 중얼거려지고 있다. 반복적이고 무한재생되는 움직임들 속에서, 관객은 인간의 에세이와 코드 이미지의 감응을 지켜보며 그들이 공유하는 조건인 시간 속에 함께 존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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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xts 얽힌 맥락들
1. 직감들
여러 가지 맥락 속에서 이 작업이 시작되었다. ㄱ 다시는 쳐다보지도 않으리라 다짐했던 코딩이 다르게 보였다. 자꾸 에러는 뜨는데 어디가 잘못됐는지도 알 수 없는 답답한... 이 아니라 자기만의 체계와 논리가 있고 내가 못하는 걸 잘할 수 있는. 공동 작업자로서의 코드. ㄴ 라투르와 비인간 행위자를 사회학 전공강의에서 접했다. 이 비인간 행위자 개념은 작업을 하며 미세한 조형요소들과 작업의 레이어들이 발휘하는 힘을 여실히 느끼고 있었던 내게 무척 흥미로웠다. 강의에서 같이 언급된 화이트헤드, 하먼의 존재론을 수업 외적으로 틈틈이 읽어보기도 ㄷ 개인적인 사건으로. 예상치 못한 사건이 생겨 세상에 대한 관점, 삶의 전망 등이 전반적으로 뒤집혔다. 이 맥락들이 얽혀 나는 내 삶에서 강렬하게 느낀, 끊임없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삶의 질기고 악착 같은 생동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코드의 무작위성(random)과 반복성(for, class 등)이 떠올랐다. 삶의 사건성과 반복성을 함의할 뿐만 아니라 눈으로 보이게도 하는 방법인 것 같았다. 나는 코드의 무작위성과 반복성을 이용해 명상적 분위기의 제너레이티브 이미지를 만들기로 했다.그리고 제너레이티브 이미지를 볼 때 왜 감정적으로 동요되곤 하는지 알고 싶었다. 여러 가지 경험들과 느낌들을 섞어서 텍스트를 썼다. 무엇을 쓰는지 명확히 알고 내가 원하는 대로 글을 이끌어간다는 느낌보다는 미세한 틈새의 가능성을 중얼거리는 글이었다.제너레이티브 이미지를 만듦에 있어서도 아주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어쩌다보니 예상치 못하게 심장 박동 같은 움직임이 만들어졌다. 나는 코드의 오해와 능력을 감사히 여기며 마음에 드는 제너레이티브 이미지를 얻었다. 고요한 명상적 분위기에서 제너레이티브 이미지와 텍스트 각각의 미세한 생동감이 돋보여야 하기 때문에 둘은 별도의 화면에 설치했다. 두 화면을 한 시야에서 보지 않게 하기 위해 두 화면이 서로 마주보게 했다. 여기까지가 2022년 겨울에 1차적으로 이 작업을 진행한 바이다.
2. 주체에서 객체로
오늘날 대부분의 인식틀은 내가 주체적으로 한 결정인지, 누구를 주체로 인정해야 하는지와 같이 '주체' 중심적 사고로 이루어져있다. 하나 주체성은 근대가 성립되는 과정에서 타자성을 전제로 옹립된 개념이라는 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주체성을 얼마나 온전한 자기 의지로, 자기 힘으로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개념이라고 본다면 보조기구의 도움을 받거나 디지털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모두 주체적이지 않은 무언가, 비정상적인 대상이 된다. 이는 오늘날의 일반적인 풍경과도 어긋난다. 나는 이러한 문제의식들 속에서 주체중심적으로 사고하기보다는 객체지향적으로 사고하기를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객체지향적 사고에 미술가의 미적 실천이 유용하게 작동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3. 물질적 생기에 관한 미적 실천의 유용성
흔히 사물들은 필요할 때 목적에 맞게 쓰는 도구로 여겨지고 만다. 우리는 사물들이 발휘하는 힘(물질적 생기 혹은 사물 권력)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는가? 베넷은 이것이 '객체에 매료되는 (미적) 경험'을 통해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는 "배수구에 쌓인 "물질 부스러기들을 보면서”1 가지는 주관적인 느낌을 객체에 매료되는 경험이라 설명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이는 “그의 주관적인 감상일 뿐 경험의 바깥에 실재하는 물질의 역량과는 아무 관련이 없”2기 때문이다. 내가 코드로 이미지를 만들면서 코드의 행위성을 느꼈듯. 이 작업 인간-코드 감응: 시간 은 미술가의 미적 실천이 물질적 생기를 발견하는 데에 유용하다고 주장한다. 미술가는 사람과 면대면으로 만나는 만큼이나 경우에 따라서는 그보다 더 많이 작업 과정에서 만나는 사물들과 상호작용한다. 그들은 사물들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 독자적인 논리를 지니고 있으며 자신의 의지를 그르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인지를 늘 마음 한 켠에 두고 있다. 그리고 사물들의 행위성을 지켜보며 유연한 태도로 작업을 하게 된다. 이러한 인지 속에서 인간-코드 감응: 시간 은 디벨롭되었다. 텍스트를 통해 미술가가 작업 과정에서 느낀 코드의 행위성을 중얼거리는 동시에 무빙 이미지를 통해 코드의 행위성을 관객도 느낄 수 있게 한다.
1문규민, <물질의 행위생태학: 물物 의 약동 • 《생동하는 물질》>, <<교차 2호: 물질의 삶>>, 읻다, 2022, p.66. 2Loc. cit.
4. 객체지향프로그래밍, 객체지향존재론
객체지향프로그래밍(Object-Oriented Programming, OOP)과 객체지향존재론(Object-Oriented Ontology, OOO)이 있다. 코딩과 철학이라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객체 지향'이라는 똑같은 말을 사용한다는 사실에, 둘 사이에 공유하는 인식의 지점이 있나, 호기심이 들었다. 나는 여러 문서들을 찾아보며 우선 OOO에 대해 더 정교하게 이해하고, OOP를 했던 경험을 살려 둘 사이에 공유하는 객체지향의 의미가 있는가를 찾아보고자 했다. 나의 이해는 다음과 같다. ㄱ OOO는 인간의 지각과는 별개로 존재한다는 것들이 있다는 입장. 인간의 지각 너머에 있는 것들을 존재로 인정하고, 물(物) 자체가 독립적으로 가진 힘을 보려고 한다. 그런데 한편으로 인간의 지각 너머 존재들은 말 그대로 지각할 수 없다, 인지할 수 없다. 즉 인간 지각 너머 존재가 '있는데' '알 수 없다' '하지만 있다'는 스탠스이다. OOO가 도달하고자 시도하는 비인간 객체들에 대한 이해는 결국 인간의 지각 범위와 겹치는 것, 그 객체와 인간이 공유하고 있는 지점을 통해서만 도달 가능하다, OOO는 그런 통렬한 자기 인식이 있다. ㄴ OOP는 객체를 일일이 코딩하지 않고, 객체들이 가진 공통 속성을 찾아내서 추상화하고 (class를 만들고), 추상화된 코드를 사용해서(call it back) 객체를 간편히 만드는 걸 말한다. 이 작업의 무빙이미지를 예로 들어보자면, 각각의 빨간 동그라미들이 다 개별 객체이다. 공통 속성을 가지긴 하지만 각각의 값들이 다 다른, 독립적인 개체이다. ㄷ OOP는 객체들끼리의 공통점을 찾아내서 추상화한다. OOO는 객체들이 서로의 공통점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고 본다. 그 추상화가 OOP와 OOO가 공유하는 태도가 아닐까. 객체를 지향하지만 완전한 객체에 도달할 수 없는. 객체-프로그래밍도 아니고 객체-존재론도 아닌 객체지향프로그래밍과 객체지향존재론. 객체지향에 대한 리서치를 하기 전 써둔 텍스트도 결국 코드와 인간이 밟고 서 있는 공통 조건인 시간으로 수렴하고 있었다. 코드와 나는 시간이라는 물리적 속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해가 발생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닐까. 코드와 교류하며 느낀 것들을 쓰다 보니 자연히 지각 가능한 끝점까지 내몰렸던 것 같다. 그리고 제너레이티브 이미지들을 멍하니 보고 있게 되는 것도 어쩌면 시간 속에서 자연히 생성했다 소멸되는 오브젝트들에 대한 감응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참고 문헌
문규민, '물질의 행위생태학: 물物 의 약동 • 《생동하는 물질》', "교차 2호: 물질의 삶", 읻다, 2022. 스티븐 샤비로, "사물들의 우주 - 사변적 실재론과 화이트헤드", 갈무리, 2021. Péter Erdélyi, 'ANT vs. OOO', "ANTHEM" 2010.9.29, 'https://anthem.wordpress.com/2010/09/29/ant-vs-ooo/'', 2023.5.19. Alexander R. Galloway, 'Assessing the Legacy of That Thing That Happened After Poststructuralism', "Alexander R. Galloway", 2015.9.6, 'http://cultureandcommunication.org/galloway/assessing-the-legacy-of-that-thing-that-happened-afterpoststructuralism', 2023.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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