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는 오랜 기간 머무른 공간을 이르는 말이다. 오랜 기간 거주한 집이나 고향, 학교 등의 물리적 공간에서 우리는 다사다난한 일들을 겪으며 터에 대한 애정과 안정감을 얻는다. 우리는 출신지를 묻는 말에 ‘(터)에서 왔다’고 답하고, ‘터’는 우리의 출발점이자 뿌리가 된다.

마음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물리적, 추상적 공간을 표현하기 위해 ‘마음의 터’ 개념을 고안했다. 마음의 터는 공간, 기억, 혈통, 종교, 소속 등 다양한 형태가 될 수 있는데, 우리는 자꾸 그곳으로 돌아가 마음을 기대며 내가 그곳과 깊숙이 연루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음의 터는 정체성이 빚지고 있는 단단한 뿌리이며 영혼이 심겨 있는 자리이다.

마음의 터(2022).

분류: text. lettering image.

정승은

text, graphic.

우리는 종종 무언가가 나를 강하게 옭아매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나의 유별난 기질이 어디서 기원했는지를 돌아보다 유년시절의 기억을 마주하고. 채울 수 없는 공허 속에서 알지 못했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발견하기도 한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으나

무언가가 나의 마음 깊숙이 박혀 나를 이루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 무언가는 예상치 못하게 발현되어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거나 공허해하는 등의 행위성을 만든다. 나의 몸은 중립적이어서 어떤 선택이든 어떤 감정이든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그 무언가들 - 과거의 기억, 고향, 사람들 - 로 돌아서서 치우쳐 있다. 나는 그 무언가들과 연루되어 있으며 강하게 사로잡혀 있다.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게 느껴질 때라든지. 누군가의 소식에 심장과 명치 주변이 미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 그들의 부재와 변고가 너무나도 새삼스럽게 느껴질 때 그들이 내게 생각보다 큰 존재였음을 깨닫는다. 나는 그 강한 연루됨을 ‘애착’이라는 단어를 써서 표현한다. 마음의 일부가 되어 나를 구성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내 신체의 일부로 느껴질 만큼. 강한 연루됨과 관심.

애착의 대상과 그 대상에게 내어준 마음의 자리를 ‘마음의 터’라고 이름 붙였다.

‘터’라는 말은 원래 오랜 기간 머무른 공간을 이르는 말이다. 옛날에, 태어난 집에서 쭉 살던 그 시절엔 거의 모든 일들이 집이나 고향을 배경으로 일어났다. 나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 나의 출신지, 내가 겪고 느낀 것들의 출발점이 된 곳, 그게 바로 ‘터’라는 말로 표현되었던 것이다. ’터’에는 공간을 배경으로 여러 일들을 겪으며 공간에 대해 가지게 된 애정이나 안정감 같은 정서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출신지를 묻는 말에 ‘(터)에서 왔다’고 답하고, ‘터’는 우리의 출발점이자 뿌리가 된다.

마음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물리적, 추상적 공간을 표현하기 위해 ‘마음의 터’ 개념을 고안했다.

마음의 터는 공간, 기억, 혈통, 종교, 소속 등 다양한 형태가 될 수 있는데, 우리는 자꾸 그곳으로 돌아가 마음을 기대며 내가 그곳과 깊숙이 연루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음의 터는 정체성이 빚지고 있는 단단한 뿌리이며 영혼이 심겨 있는 자리이다.

이름을 붙여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건, 희미한 감각에 명확한 존재를 부여하고, 그 단어를 매개로 세상의 여러 면면들을 건져올릴 수 있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공간에서는 ‘마음의 터’를 매개로 건져올린 삶의 여러 면면들을 다룬다. 마음을 내어주는 일, 마음의 터를 갈망하는 일, 마음을 무장하는 일 등등. 살아가며 느꼈던 마음의 일들을 나름의 방식대로 풀어냈다. 마음의 터를 다루는 일이 삶을 이루는 계기들을 존중하는 방식이라고 믿는다. 이곳을 방문해주신 분들께 닿는 부분이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