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미대 전공수업에 뛰어들면서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도대체 미술이란 뭘까,

작업이란 뭘까,

어떤 건 전시장에 들어가고 왜
어떤 건 그렇지 못할까.

어떤 것이 좋은 작업일까


에 대한 고민이 늘 함께 했습니다. 고민을 늘 마음 한 켠에 품은 채 전시를 보러 다니고 다른 작가들의 작업을 찾아보며 제 작업을 계속했고, 그 과정에서

작업에 대한 저만의 발견과 믿음, 지식들이 생겨났습니다.

이 페이지는 제가 작업에 관해 믿고 있는 것들을 풀어보는 작업입니다. 즉 이 페이지는 제가 ‘작업을 하는’ 행위와, 그 결과물인 제 ‘작업’들을 지탱하는 어떤 믿음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 믿음들엔 ‘작가가 만들고, 관객이 보는’, 작업에 관한 기본적이고 단순한 이해

이면에서 벌어지는 복잡미묘한 생동들에 대한 관심

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느 작업을 보고 어리둥절해 하거나, 전혀 와닿지 않는 작업에 냉소했던 경험, 어느 작업에 완전히 이해받는 것처럼 느끼거나 완전히 무시되는 것 같았던 경험들이 연루되어 있습니다. 미술관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전시 설명을 읽고 이 전시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경험, 전시에 갔으나 실망했던 경험, 작업 앞에서 인스타 업로드용 사진을 찍는 사람들 때문에 성가셨던 경험, 작업이 마음에 들어서 여러 번 촬영했던 경험이 깃들어 있습니다.

좋은 작업에 대한 기준은 각자 다르다는 전제하에 저는 저만의 시선을 이야기하고 제안합니다. 보는 분들에게 쉽게 읽히기를 바라면서 여러 번 고쳐 썼고, 정밀한 언어보다는 쉬운 언어를 택해 썼습니다. 귀여운 콜라주들은 덤입니다!

알지 못하는 다음 내용을 기대하며 쭉 스크롤해 읽어 내려갈 수도 있고. 중간에 있는 파란색의 하이퍼링크를 클릭해서 당신의 호기심을 따라갈 수도 있습니다. 둘 다 적극 권장!

전시, 팝업, 브랜드, 카페… 오늘날의 시각문화는 다채롭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영상과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영상은 도대체 무엇이 얼마나 다른 걸까요?

이 글은 미술관에서 전시된다는 이유로 더 훌륭하다고 할 수 없음을 전제합니다. 그리고 작업의 권위가 아니라 관객에게 보여졌을 때의 경험을 기준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전시’라고 인식한 것을 봤던 경험을 떠올리면서 읽어주세요.

이 글은

작업이 관객의 감각에 영향을 미친다

는 가장 본질적인 사실에서 출발합니다.

‘전시에 가는’ 행위는 근본적으로 ‘비일상적이고 다채로운 감각 자극들에 본인을 노출시키는 선택’

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춥니다. 전시는 매일 할 일을 처리하는 공간과는 다른 시각적, 청각적, 후각적 자극들이 있는 곳입니다. 사람들이 전시에 갈 때 비일상적인 감각 자극들과 연결되는 것에 대한 기대가 있습니다.

전시장의 ‘감각 자극’들

과,

그들과 ‘연결되고자 하는 기대’

,

연결되었을 때의 체험들

을 이 페이지는 다룹니다.

사람이 작업과 연결되고자 기대하고 무언가와 연결되고 연결되었을 때 느끼는 것들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앞으로 글을 전개할 때

‘작업향유경험’

이라는 말을 쓰겠습니다. 작업향유경험은 어떤 작업을 향유하는 관객 저마다의 경험을 의미합니다. 뒤에서 더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작업향유경험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이 글은 사람들이 작업과 연결되는 저마다의 맥락과 방식을 존중합니다.

어떤 작업이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할 때, 관객이 작업 하나를 경험하는 과정은 대략 다음과 같을 거예요.

관객은 미술관에 들어가서 작업을 흘긋 보거나, 작업에서 나오는 사운드를 듣게 됨으로써 작업을 처음 마주한다. 작업을 제대로 인지하기 전, ‘저기에 뭔가 있구나!’ 정도의 인식과 작업에 대한 첫인상을 갖게 된다. 이윽고 작업에 가까이 다가가 작업을 본다. 관찰하며 생각에 잠기기도 할 테고, 만져볼 수 있는 작업이라면 만져보기도 할 테고, 작업 옆에 있는 캡션을 보고 생각을 할 수도 있고, 작업에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다면 사진을 찍을 수도. 그리고 작업에서 돌아서서 작업이 보이거나 들리지 않을 때까지 멀어진다.

(…

온라인 공간에 전시된 작업의 경우, 작업이 위치한 웹사이트와, 같은 화면 속에 위치한 요소들, 화면의 빛이나 사운드가 영향을 미치는 관객의 물리적 공간 일부 정도까지가 작업이 작동하는 장의 영역일 것입니다.…)

작업이 관객의 감각에 영향을 미치는 범위는 캡션에 쓰여 있는 캔버스의 크기나 스크린의 크기, 조각의 부피만이 아니에요.

관객이 작업을 마주할 때부터 작업의 물질적 영향력이 닿지 않을 만큼 멀어질 때까지 작업은 관객의 감각을 통해 관객과 관련을 맺는 거죠.

작업이 이 과정에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감각다발들은 작가가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둔 작업입니다. 그러나 그 이상이기도 합니다.

작업이 위치한 공간의 특징들도 관객과 연결될 수 있는 감각다발입니다. 무엇부터가 작업이고 어디까지가 배경인지 작업에 써져 있지 않기 때문에, 공간의 여러 특징들은 경우에 따라 작업의 일환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일례로 저는 작가님이 '무한한 사랑’을 주제로 하신 설치 작업을 오래된 한옥 전시장에서 보게 되었고 (개인적으로는 폐가 같다고 느꼈어요) ‘괜찮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하는 오싹함’으로 경험한 적이 있답니다… 작업과 공간이 명확히 나눠져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관객은 어디까지가 작업인지, 이것도 작업의 일환인지 의심하고 자유롭게 상상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작가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작업을 경험할 수도 있는데요, 앞선 예시가 이 경우에 해당하겠습니다.

작업이 야외 공간에 설치되어 있는 경우에는 빛의 움직임과 사람들의 이동, 시시각각 달라지는 바람 같이 우연적이고 가변적인 요소들이 관객의 작업향유경험을 구성하는 감각다발이 되기도 합니다.

공간 이외의 더 많은 감각다발들에 대해서는 6장에서 다룹니다. 매우 흥미로울 것입니다!

관객의 작업향유경험은 작가가 의도한 것을 넘어서거나 그와 어긋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작가가 의도적으로 작업에 배치한 요소들은 관객의 작업향유경험을 만들어내는 데에 소스를 제공하고 어느 정도 구획하는 역할을 합니다.

작가는 바닥에 발 모양 스티커를 붙여놓고 그 위에 서서 작업을 봐달라는 지시사항을 붙여놓을 수도 있고. 의미를 쉽게 파악할 수 없는 그림을 그려 관객이 혼란스러움을 경험하게 할 수도 있어요. 관객의 소리에 따라 색이 변하는 작업을 만들어서 새로운 감각 체계 (청각→시각)를 경험하게 할 수도 있어요. 캡션에 작업 정보 일부를 적어 관객이 작업을 해석할 때 사용할 틀을 제시할 수도 있고요.

작가는 이 요소들을 통해 자신의 의도를 실현하고자 합니다. 작가는 자신의 의도를 실현할 수 있는 재료, 형태, 곡률, 색을 고민하고 선택하고 조합하고 조율합니다. 아주 미세한 곡률의 차이도 작업의 전체적인 느낌을 다르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잘 고려합니다.

작가의 고려가 담긴 작업의 요소들은 공간에 놓입니다. 바닥에 붙여진 발 모양 스티커, 난해한 그림, 의미를 내포하는 시각 요소들. 이 개체들은 관객과 연결되기를 기다리는 감각 다발들이에요. 즉 작가가 하는 일은 요소들을 선택하고 조합해서

관객과 연결될 준비가 된 감각들의 네트워크를 구성

하는 일이죠.